오디샤주의 다이아몬드 삼각지대, (2) 라트나기리

(2) 보석의 언덕, 라트나기리

오리사(Orissa) 번성했던 불교 신앙과 교육의 중심지였다. 그리고 가운데에 다이아몬드 삼각지대(Diamond Triangle) 있었는데 인접한 개의 언덕에 위치한 우다야기리(Udayagiri), 라트나기리(Ratnagiri), 랄리트기리(Lalitgiri) 유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이아몬드 삼각지대라는 이름은 이곳에서 금강승(金剛乘, Vajrayāna) 시작되었다고 해서 붙여졌다.

라트나기리 승원1의 상징적인 푸른 빛을 띠고 있는 주 출입구 문틀.

우리는 번째 목적지 우다야기리를 떠나 다음 목적지인 라트나기리로 향했다. 라트나기리는 우다야기리에서 동쪽으로 직선거리 7km 떨어져 있는데, 켈루오(Keluo) 강과 비루파(Birupa) 강의 합류 지점에서 가까운 켈루오 강변에 위치한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 도착한 라트나기리 승원 단지는 아시아(Assia) 산맥에서 뻗어 나오긴 했지만 외톨이로 있는 언덕의 평평한 정상부에 자리잡고 있었다.

라트나기리 언덕 아래에 당도해서도 도로 가의 작은 언덕 위에 이렇게 넓고 평평한 땅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이렇게 대규모의 승원 단지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기 힘들었다. 잠깐 언덕을 오르면 언덕 정상부에 고요한 별세계의 평지가 나타난다. 아마 승려들의 수행생활에 필요한 이러한 호젓함과 고요함에 이끌려 라트나기리 승원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언덕 정상부에 도착했다.

오디샤주의 다이아몬드 삼각지대와 라트나기리의 위치

라트나기리의 발굴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자지푸르(Jajpur) 지방행정 공무원이었던 라이 몬모한 차크라바르티(Rai Monmohan Chakravarti) 이곳을 처음으로 방문했으며, 그의 방문 보고서가 1906 쿠타크 디스트릭트 가제티어(Cuttack District Gazetteer) 게재되었다. 뒤에는 1927 오리사 역사학회(Orissa Historical Society) 간사였던 비렌드라 나트 레이(Birendra Nath Ray) 방문했으며, 그의 요청에 따라 1928년에는 당시 캘커타대학(Calcutta University) 교수였던 차칼다르(Haran Chandra Chakaldar) 현장을 방문했으며 자신의 보고서를 모던 리뷰지(Modern Review) 발표했다.

또한 당시 캘커타 인도박물관(Indian Museum, Calcutta) 책임 고고학 담당자였던 프라사드 찬다(Ram Prasad Chanda) 1927~28 기간동안 오리사의 여러 유적지를 방문하고 1930년에 발표한 자신의 조사보고서에서 라트나기리에서 발견된 조각품들이 언급되었다. 데바프라사드 고쉬(Devaprasad Ghosh) 모던 리뷰지에 발표한 글에서 라트나기리에서 발견된 거대한 붓다 두상(頭像)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Bhumisparsha Mudrā) 자세의 붓다像이 자바섬 보로부두르(Borobudur) 5선나불(Dbyani-Buddha) 像과 서로 연관성이 있음을 주장했다.

라트나기리가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면서 인도고고학위원회(Archaeological Survey of India) 관리 대상이 되었으며, 마침내 최초의 체계적 발굴 작업이 1958~1961 기간동안 위원회의 동부분원(Eastern Circle) 의해 이루어졌다. 발굴 책임자는 분원장이었던 데발라 미트라(Debala Mitra)였다. 발굴 작업으로 라트나기리 마하비하라(Ratnagiri Mahavihara) 확인된 중요한 불교 시설 유적이 확인되었다.

라트나기리가 발굴되기 전의 모습.
라트나기리 발굴이 진행되던 당시의 모습.

라트나기리에서는 거대한 스투파(스투파1), 개의 거대한 사각형 승원(승원1 2), 하나의 부속棟이 있는 승원, 많은 수의 소규모 스투파들, 여덟 개의 사원, 주로 돌로 또는 일부 청동으로 제작된 많은 조각품들이 발굴되었다. 미트라는 라트나기리의 핵심적인 시설들의 건립 연대를 5세기로 추정했으며, 추가적인 건축은 12세기까지 지속되었다 했다. 13세기 무슬림 침공과 함께 라트나기리도 쇠퇴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라트나기리에서의 종교적 활동은 16세기까지 지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라트나기리와 관련된 권위있는 연구는 1987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낸시 호크(Nancy Hock) 버클리대(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호크는 소작(所作) 탄트라(kriyā-tantra) 문구들, 특히 문수보살진언이 조각품들과 관련하여 라트나기리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많은 불공견색관음(不空索觀音, Amoghapāśa) 像이 발견되었는데 라트나기리에서 보살이 숭배되었을 보여준다. 호크에 의하면, 탄트라란 용어가 라트나기리에서 숭배되었던 불교의 모습을 가장 설명해준다.

탄트라불교 학문 중심지

인도의 탄트라불교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대부분 티베트, 중국, 일본 등지의 불경 기록에서 것이다. 그리고 이들 지역의 불경과 기록은 인도의 이전 시대 산스크리트어 불경과 기록을 번역한 것이다. 티베트 기록에 의하면, 라트나기리는 요가와 탄트라의 학문 중심지로 높은 명성을 얻었던 것으로 보이며 많은 저명한 탄트라 스승들이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고 다른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었다.

라트나기리의 발굴 과정에서는 수많은 불교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으로는 입상 또는 좌상의 다양한 붓다像, 결발보관(Jata-mukuta) 로케슈바라(Lokeśvara), 미륵(Maitreya, 彌勒), 문수(文殊, Manjušri) 보살, 관음보살(觀音菩薩, Avalokitesvara), 잠발라(Jambhala), 야마리(Yamari), 삼바라(Sambara), 대흑천(大黑天, Mahakala), 다라보살(多羅菩薩, Tara), 귀자모신(鬼子母神, Hārītī), 아파라지타(Aparājita), 바슈다라(Vasudhârâ), 아리아사라스와띠(Aryasaraswati) 등이 있는데 8~9세기경부터 꽃피우고 있던 금강승의 시륜승(時輪乘, Kālacakrayāna) 절정기에 있던 시대의 것들이다.

라트나기리에서 수많은 희귀 불교 유적 유물이 발견되었지만 모든 것이 탄트라 또는 금강승과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 라트나기리는 처음에 대승불교를 받아들인 승가람이었으나 나중에 금강승을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라트나기리 언덕 위의 배치도

승원1

도로가에서 언덕을 올라가다 보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울타리 안에 줄을 맞추어 있는 많은 수의 봉헌탑이다. 사실 라트나기리에는 곳곳에 수백 개의 작은 봉헌탑들이 산재해 있다는 점에서 다른 많은 불교 유적지와 차이가 난다. 봉헌탑은 신자들과 순례객의 신심의 표현이라고 , 라트나기리는 많은 신자들과 순례객이 찾던 믿음의 중심이었음을 증명한다고 있을 같다. 많은 수의 봉헌탑이 라트나기리를 찾는 사람들이 있도록 이곳으로 옮겨져 철조망 울타리 안에 일렬로 전시되고 있다.

언덕을 오르다 보면 한 무리의 봉헌탑이 철조망 울타리 안에 일렬로 정렬하고 있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신자들과 순례객들이 자신들이 믿는 신에 대한 신심을 나타내려 했던 듯 봉헌탑 표면에는 다양한 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울타리로 보호되고 있는 봉헌탑 무리에서 왼쪽으로 계속 발걸음을 옮기면 금방 넓은 공지가 나타난다. 공지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이곳을 찾는 순례객과 관광객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으며 인도 불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 불교 유적인 개의 사각형 벽돌 승원이 나타난다. 전통적인 차투-살라(chatuh-sala) 양식으로 건립된 승원1 승원2 좁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이웃해 나란히 있다.

승원1 라트나기리에서 가장 규모의 승원이며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승원은 정사각형(55mx55m) 구조이며, 중앙에 바닥이 돌로 포장된 중정(中庭) 또는 안뜰이 있고 이를 기둥이 있는 베란다가 둘러싸고 있으며 이를 다시 24개의 개별 수련실이 둘러싸고 있다. 승원의 서남쪽 구석에 있는 개의 계단은 승원이 최소한 이층 구조의 건물이었음을 보여준다.

미트라는 승원의 건립이 시기에 걸쳐 이루어졌다고 한다. 1 구조물은 기둥, 붙임기둥, 문틀, 탑문의 외장을 제외하고는 주로 벽돌로 지어졌다. 시기의 연대를 특정할 있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부바네스와르(Bhubaneswar) 바이탈(Vaital) 사원과 시시레슈바라(Sisireshvara) 사원의 조각품 장식과의 유사성으로 1기는 8세기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진다. 일부 돌에 새겨진 명문(銘文)으로 2기는 11세기 이전이 수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3기에는 갑작스러운 추가 또는 변경이 경솔하게 이루어진 부분이 있었다. 3기는 13세기보다는 훨씬 이후였을 것으로 보인다.

승원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쇠퇴와 마모를 겪었으며 대규모의 복원 작업이 뒤따랐다. 복원 작업으로 승원은 좀더 인상적인 모습을 갖게 되었다. 깎아 다듬은 돌을 사용해 전면부 벽에 외장으로 둘렀다. 아래층의 개별 수련실은 버려졌고 잔해더미로 메워졌다. 그리고 이층에는 개별 수련실이 만들어졌다. 북쪽 뒷벽에 있는 신전 공간을 넓혀서 입구의 현관이 마련되었다.

승원1과 2의 전경. 오른쪽의 승원1과 왼쪽의 조금 작은 규모의 승원2가 중간에 좁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이웃해 서 있다.
발굴 당시 작성된 승원1과 승원2의 내부 배치도.

승원은 전면부를 제외하고 삼면이 3 양식을 띄고 있다. 남향을 하고 있는 전면부는 5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가운데에 입구 현관이 위치한다. 남쪽에서 계단을 올라 승원1 입구로 접근하면 가장 먼저 방문객의 눈길을 붙잡는 주목할 것이 정교하게 조각된 푸른 빛의 녹니석(綠泥石, Chlorite) 문틀이다. 푸른 빛깔로 인해 녹니석 문틀은 표면을 가지고 있는 전체적 승원 구조에서 도드라져 보인다.

푸른 빛의 녹니석 문틀 부분 상인방 중앙에는 코끼리로부터 목욕을 받고 있는 힌두 여신 락슈미(Gajalaxmi) 모습이 조각되어 있고 문틀 양쪽의 문설주 아래 부분에는 다른 수행인들과 함께 수호신 드바라팔라(Dvārapāla) 멋진 모습로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양쪽의 드바라팔라 바로 옆에 있는 인물은 시종이 양산을 받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왕족인 것으로 추정된다. 미트라는 인물이 왕족일 경우 승원이 왕가의 후원을 받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승원1의 전경. 정면에서 계단을 올라서면 출입구 현관에 들어서게 된다.
승원1의 5단 양식 전면부 출입구 주변의 모습.
푸른 빛의 녹니석 문틀 위 상인방 중앙에는 코끼리로부터 목욕을 받고 있는 힌두 여신 락슈미(Gajalaxmi)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어 힌두교의 영향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엘로라석굴(Ellora Caves)의 16번 동굴인 힌두교사원 카일라사사원(Kailasa Temple)에서 만날 수 있는 락슈미(Lakshmi)의 모습. 연꽃 연못의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략슈미를 코끼리들이 목욕을 시켜주고 있다 (Gajalaxmi).
문틀 양쪽의 문설주 아래 부분에는 여러 인물상이 조각되어 있다. 수호신 드바라팔라가 멋진 모습을 취하고 서 있고 그 옆에는 시종이 받치고 있는 양산을 쓰고 있는 왕족이 서 있다.

입구 현관의 안쪽에는 푸른 빛의 문틀 양측으로 7 돌출부가 있다. 중에서 서쪽 돌출부에는 거북을 딛고 있는 야무나(Yamuna) 여신의 조각이 있으나, 동측 돌출부에는 아무 것도 없이 비어 있는 상태이다. 앞쪽 현관에는 다른 개의 조각이 있다. 미트라는 앞쪽 전면부 입구 현관과 같은 곳이 있는 유적은 날란다 여러 곳이 있지만 뒷벽 표면까지 이렇게 다양한 조각으로 생동감 있게 처리되어 있는 곳은 드물다고 했다.

입구 현관 안쪽 서측 7단 돌출부에 조각되어 있는 거북 등을 딛고 서 있는 야무나 여신상 (왼쪽); 거북의 등을 발로 딛고 서서 물병을 들고 시동을 거느린 테라코타 야무나 여신상. 5세기 굽타시대. 뉴델리 국립박물관 (오른쪽)

입구 현관의 바깥쪽 측면에는 벽감(壁龕) 설치되어 있는데, 서측 벽감은 비어 있는 반면에 동측 벽감에는 여신상이 모셔져 있다 미트라는 여신상이 강의 여신이라고 추정한 있다. 입구에는 앞쪽과 뒤쪽으로 개의 현관이 있는데 뒤쪽 현관은 승원의 내부 베란다로 이어진다. 앞쪽 현관의 안쪽의 양측 벽돌 벽면에도 각각 하나씩 개의 벽감이 설치되어 있다.

개의 벽감 서쪽 벽면의 벽감 내에는 연화수보살(蓮花手菩薩, Bodhisattva Padmapani), 동쪽 벽면의 벽감 내에는 금강수보살(金剛手菩薩, Vajrapāi) 모셔져 있다. 금강수보살의 후광 양측면에서는 5선나불이 자리잡고 있는데, 오른쪽에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Bhumisparsha Mudrā) 자세의 아축(, Akshobhya)여래가 그리고 왼쪽에는 보생(寶生, Ratnasambhava)여래가 위치하고 있다.

승원 전면부 입구 현관 동측 벽의 벽감에 모셔진 여신상(강의 여신) (왼쪽); 연화수보살 (중앙); 금강수보살 (오른쪽)

앞쪽과 뒤쪽의 입구 현관 사이에는 좁은 통로가 있다. 뒤쪽 입구 현관에도 동쪽과 서쪽 벽에 벽감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는 귀자모신(鬼子母神, Hārītī) 그녀의 배우자인 판치카(Pañcika, )가 각각 모셔져 있다. 이 당시 인도의 승원에 왜 팔로 아이를 안고 있거나 무릎 주변에 여러 명의 아이를 데리고 있는 모습의 귀자모신像이 모든 인도 승원의 현관이나 식당 구석에서 발견되는지에 대한 당나라의 유학승 의정(義淨) 설명은 앞서 ‘(1) 떠오르는 태양의 언덕, 우다야기리에서 했었다.

귀자모신(왼쪽)과 판치카(오른쪽)

승원의 북쪽 끝에는 뒷벽의 중앙에 신전이 있다. 신전 앞에는 베란다로 연결되는 좁은 입구가 있다. 신전의 문틀이 사라진 자리에는 문설주만 있으며, 양측 문설주 아래 부분에는 각각 개의 벽감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는 드바라팔라, 보살, 카마라다라니(Chamara-dharani), 뱀신 나가(Naga) 모습이 각각 새겨져 있다. 드바라팔라 부분에 남아 있는 문설주 부분에는 오리사 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다양한 곡예 자세의 인물상 조각을 지금도 있다.

승원1의 신전. 뒤쪽(북쪽) 벽 중앙에 있으며 입구에는 문틀도 사라지고 없으며 문설주만 남이 있다.
문설주에 남아 있는 조각에서는 여전히 정교함을 느낄 수 있다.
문설주 아래 부분에는 오른쪽부터 수호신인 드바라팔라, 보살, 카마라다라니, 뱀신 나가의 모습이 각각 조각되어 있다.

신전 안으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삼단 기단 중앙에 항마촉지인 자세의 붓다 좌상을 마주한다. 붓다 좌상은 여섯 개의 서로 다른 돌로 만들어져 있으며 죔쇠와 장부촉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불상의 모든 부위들은 신전 안에서 해체된 발견되었지만 원래 상태로 복원된 것이다. 붓다의 뒤편 서쪽에는 연화수보살이, 동쪽에는 금강수보살이 붓다를 보좌하고 있다. 보살은 오른 손에 벌레를 쫓는 채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붓다 길에 벌레가 밟혀 죽는 일이 없도록 쫓으려는 모양이다.

신전 안에는 중앙에 여섯 개의 돌로 이루어진 항마촉지인 자세의 붓다상이 있고, 붓다의 뒤편 서쪽에는 연화수보살이, 동쪽에는 금강수보살이 붓다를 보좌하고 있다.

승원 건립 2기에 신전에 대한 다양한 변경이 이루어졌다. 가장 안쪽 성소에는 아무런 변경도 없었지만, 입구가 넓혀지면서 남쪽으로 돌출되어 나왔다. 성소와 입구를 연결하는 좁은 통로도 1기의 문틀만 원래 상태로 남겨두고 측면 벽을 포함하게 되면서 길게 늘어나게 되었다. 신전의 전면부가 확장되면서 입구 현관 또는 대기실도 역시 같은 비율로 늘어났다. 입구 현관의 확장은 뒤쪽 개별 수련실을 벽돌로 막아 가능해진 것이다.

동서의 측면 벽에는 벽감이 설치되어 있다. 서쪽 벽에는 6개의 벽감이 있는데 3개는 비어 있고 3개에만 신상들이 남아 있다. 미트라의 발굴보고서에 의하면, 발굴 당시에는 벽감들 가운데 5개에 신상들이 남아 있었다. 위에 있는 개의 벽감에는 각각 항마촉지인 자세와 전법륜인(轉法輪印, Dharmachakra Pravartana Mudrā) 자세로 앉아 있던 붓다상이 모셔져 있었는데 지금은 비어 있다.

서쪽 아래에 있는 개의 벽감에는 불상이 모두 채워져 있는데, 가운데 개가 아축(, Akshobhya)여래 상이다. 서쪽 벽에서 남쪽과 북쪽으로 이어지는 벽에도 개의 벽감이 있다. 남쪽 벽의 벽감에는 지세보살(持世菩薩, Vasudhāra), 북쪽 벽에는 항마촉지인 자세의 붓다가 각기 모셔져 있다. 미트라는 지세보살 벽감 근처에 홀로 있는 붓다상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현재 자리에는 이상 수가 없다.

확장된 입구 현관의 서쪽 벽.

2기에 추가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전면부를 구성했던 조각된 많은 돌들이 잔해더미 여기저기에서 발견되었다. 조각들이 모두 조립되어 앞쪽 입구 한쪽에 놓이게 되었다. 2 전면부는 중앙 출입구 틀이었으며 한쪽에 3개씩 모두 6개의 깊은 벽감이 설치되어 있다. 중앙 출입구 틀은 1기에 설치되었던 문틀과 일렬로 세워졌었다.

중앙 출입구 틀의 가운데 문틀 부분 상인방 중앙에는 항마촉지인 자세의 붓다像이 있다. 그리고 양측에 깊게 파인 벽감의 상인방 중앙에는 각기 다라보살을 있다. 또한 출입구 틀의 동서 측면에도 인물상을 조각해 놓은 벽감이 보인다. 동쪽 측면에는 무릎을 끓고 있는 여인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여인은 남자에게 그러지 말라고 사정하고 있는 듯하다.

서쪽 측면의 벽감에는 서로 사랑하는 남녀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것을 , 동쪽 측면의 남녀의 모습도 성교행위의 주제와 관련이 있을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데방가나 데사이(Devangana Desai) 그런 주장을 하고 있으며 성교 중에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는 유사한 개의 사례를 들고 있다: 마이소르 바갈리 소재 사원의 조각, 부바네스와르 소재 링가라자(Lingaraja) 사원의 조각, 그리고 코나라크(Konark) 태양신사원(Sun Temple) 조각.

제2기에 추가되었던 전면부로 제1기에 설치되었던 출입구 문틀과 일렬로 세워졌었다.

승원의 중정을 둘러싼 베란다는 현재 거의 대부분 사라진 상태이기 때문에 마치 회랑과 같은 느낌을 준다. 중정에 들어서면 여기저기에 많은 불상들이 벽에 기대어 서있는 모습에 감탄사가 나온다. 특히 이곳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다양한 크기의 붓다 두상(頭像)인데, 중에도 거대한 크기의 두상은 원래 두상으로 제작되었는지 아니면 몸체 부분이 사라진 것인지 궁금증이 일었다. 라트나기리의 조각은 자바, 수마트라, 발리 등의 조각에도 영향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승원1의 내부 모습.
승원1 발굴 과정에서 발견된 불상 및 조각품들이 승원 내부 벽에 기대어 전시되고 있다.

승원2

라트나기리의 승원2 승원1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작은 규모의 사원이다. 승원2 정사각형(28.95mx28.95m) 1 구조이며, 베란다를 둘러싸고 반원형 아치 지붕을 가진 18개의 개별 수련실이 배치되어 있다. 남향의 승원2 문틀, 창문, 베란다, 경계석 바닥포장 등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벽돌로 지어졌다.

승원2의 출입구에서 뒤쪽 벽에 있는 신전을 바라본 모습.
승원1의 이층에서 내려다 본 승원2의 내부 모습. 신전, 중정, 개별 수련실 등이 눈에 들어온다.

북측 벽에 위치하여 남쪽으로 향하고 있는 신전에는 여원인(與願印, Varada Mudrā) 자세로 있는 붓다像이 모셔져 있다. 그리고 붓다의 측면에는 각각 아주 작은 형상의 브라흐마와 인드라가 호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산카샤의 기적 또는 도솔천으로부터 붓다의 강림 사건을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팔의 인드라는 왕관을 쓰고 연꽃 위에 서서 양산을 들고 있다. 반면에 개의 머리를 가지고 턱수염을 기른 팔의 인물은 브라흐마인 듯하다.

미트라는 승원이 3단계에 걸쳐 건립되었다고 주장한다. 1기는 늦어도 굽타시대까지는 건립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1기에 건립되었던 부분은 퇴락을 겪었고 위에 2기의 건립이 이루어졌다. 2기에 건립된 것들 가운데에서는 부서진 벽과 벽돌 기반만이 발견되었다. 부바네스와르에 있는 파라수라메슈바라 사원과 비교하면 2기는 7세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승원의 현재 구조물은 3기에 해당하며 늦어도 11세기까지는 건립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마하스투파

승원2 출입구에서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마자 많은 봉헌탑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곳을 지난다. 계속 발걸음을 이어가면 승원2 출입구에서 100m 되는 곳에 마하스투파(Mahastupa) 매우 규모의 벽돌 스투파 유적이 나타난다. 스투파의 기초는 정교하고 대칭적인 배치를 보여준다. 스투파는 정사각형(14.3mx14.3m)이며 변이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다.

승원1의 이층에서 저 멀리 마하스투파를 바라본 모습. 승원2의 앞쪽에는 작은 봉헌탑들을 볼 수 있다.

스투파의 기초 위에는 둥그런 벽돌 원통형 층만이 겨우 남아 있다. 스투파의 기초는 이전 스투파의 기초 위에 건립된 것이다. 근처의 작은 스투파에서 발견된 여러 개의 석판으로 이전 스투파는 굽타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판에는 5~6세기 문자로 연기경(緣起經)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 이전 스투파에서 남아 있는 것은 주추석뿐이다. 위에 다음 스투파가 건립될 때에는 원래의 다각형에서 원형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스투파의 기초는 3 양식인데 단은 2개의 부분으로 분리되어 있어서 면에는 여섯 개의 둘출부를 위아래로 있다. 돌출부는 우묵 들어간 부분으로 분리되어 있다. 스투파 기초 위의 원통형 벽돌 층은 바퀴 모양을 하고 있다. 바퀴에는 가장자리 테두리가 있고 12개의 바퀴살이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는 형태이다. 마하스투파와 둘레에는 겹으로 원형의 벽이 건립되었으며, 사이의 공간은 주변을 있는 보행로 역할을 했다.

마하스투파.

마하스투파의 주변 지역에는 크고 작은 다양한 형태의 봉헌탑들이 산재해 있다. 봉헌탑들이 그야말로 총총히 박혀 있는 모습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봉헌탑에는 벽돌 또는 돌로 쌓아 올린 것과 돌을 조각해 만든 것으로 나뉜다. 돌을 조각해 만든 봉헌탑이 훨씬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벽돌 또는 돌로 쌓아 올린 봉헌탑의 수도 상당하다. 형태도 다양하며, 내부에 사리나 경전을 새겨 넣은 경우도 있고, 또는 아무 것도 넣지 않은 경우도 있다.

라트나기리에는 수많은 봉헌탑을 만날 수 있으며, 이 봉헌탑의 대부분이 마하스투파 주변에 몰려 있다.

마하스투파의 동쪽으로 바로 이웃하여 전통적인 3 양식의 웅장한 벽돌 스투파2 있던 곳이 있으나 지금은 기단만 남아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스투파의 높이는 2.3m이다. 마하스투파와 스투파2 있는 구역은 주변에 작은 봉헌탑들이 총총히 박혀 있어 하늘에서 보면 마치 벌집처럼 보일 같다.

마하스투파에서 서쪽으로 60m 거리에는 대흑천(大黑天, Mahakala) 주신으로 모시는 오래된 마하칼라사원이 있다. 처음에는 불교신으로 모시기 시작했던 배가 불룩한 팔의 인물이 이제는 힌두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사원의 현관에 있는 벽감에는 항마촉지인 자세의 붓다, 연꽃을 들고 있는 다라보살, 금강살타보살(金剛薩菩薩, Vajrasattva) 모셔져 있다.

하나의 부속棟이 있는 승원

언덕을 내려오면서 봉헌탑이 줄을 맞추어 울타리 안에 있는 곳에 도달하면 우측으로 돌아 계속 언덕을 내려오는 대신 북서쪽으로 박물관까지 계속 걸어가면 작은 승원 유적이 나타난다. 승원은 하나의 부속동이 있는 승원이라 불린다. 승원은 베란다를 전면에 두고 개의 개별 수련실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가운데 방은 예배실로 사용되었고, 다른 개의 방은 거주용이었다. 승원도 동일한 배열의 이전 구조물 위에 건립되었다.

현장에서는 소마밤슈(Somavamshi) 왕조의 마하시바굽타 5(Mahasivagupta V, 1100-1110) 동판 선포문이 발견되었다. 선포문에는 아마도 라트나기리에서 은퇴 삶을 살았던 라니 카르푸라스리(Rani Karpurasri) 사람에게 우타라 토살리(Uttara-Tosali) 코나마을을 하사한다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라트나기리 박물관

라트나기리에는 라트나기리 발굴 과정에서 발견된 유물을 현장에 전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현장박물관이 있다. 언덕의 경사를 활용해 3단으로 세워진 박물관에는 4개의 전시실이 있다. 3개의 전시실에는 주로 조각품이 전시되고 있으며, 번째 전시실에는 () 상아(象牙) 조각품, 테라코타, 진흙 인장, 동명판(銅銘板) 등이 전시되고 있는 중이다.

박물관의 외관.
박물관에 전시된 거대한 붓다 두상.
박물관에 전시된 작은 봉헌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