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마할, 영원히 변치 않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 이야기

라자스탄(Rajasthan)으로 향하기 , 우리는 델리에서 생긴 하루의 여유를 아그라(Agra) 다녀오는데 사용하기로 했다. 전날 예약해 기사가 딸린 렌터카가 아침 일찍 호텔로 우리를 태우러 왔다. 2012 개통되었다는 야무나고속도로(Yamuna Expressway) 이용해 3시간 이내에 우리는 타지마할(Taj Mahal) 당도할 있었다.

타지마할 주차장에 도착한 우리는 어수선한 주변의 모습에 작잖게 놀랐다. 릭샤, 마차, 낙타차 등이 어지러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호객꾼들이 주차장에 도착하는 관광객들에게 꽤나 적극적으로 따라다녔다. 타지마할이 이런 곳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던 순간, 야무나(Yamuna) 강변에서 정말 동화처럼 눈부신 대리석의 타지마할이 앞에 나타났다.

타지마할의 모습
타지마할 주변 지도

타지마할 건설

타지마할은 무굴(Mughal) 제국의 수도였던 아그라의 야무나강 남쪽 강변에 자리잡은 궁전 형식의 묘지이다. 무굴제국의 황제였던 자한(Shah Jahan, 재위 1628~1658) 무척이나 사랑했던 왕비 뭄타즈 마할(Mumtaz Mahal) 추모하여 만든 것이다. 무굴제국은 물론 이탈리아, 이란,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의 건축가와 전문가들을 불러오고, 기능공만 2 명이 동원되어 22년간 대공사 끝에 1653 완공되었다.

최고급 대리석과 붉은 사암은 인도 현지에서 조달되었지만, 궁전 내외부를 장식한 보석과 준보석들은 터키, 티베트, 미얀마, 이집트, 중국 세계 각지에서 수입되었다. 이슬람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 받으며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건축물 가운데 하나인 타지마할에는 국가 재정에 영향을 정도의 거액이 투자되었다고 한다. 당시 투입된 총비용은 대략 3,200백만 루피로, 2015 가치로 환산하면 528 루피 또는 827백만 달러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한은 타지마할이 완공된 얼마 되지 않은 1658 아들 가운데 하나인 아우랑제브(Aurangzeb) 반란으로 왕위를 박탈당하고 아그라요새(Agra Fort)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 탑에 갇혀 말년을 보냈다. 다행히도 아그라요새에서는 2km 떨어진 타지마할의 모습을 있었고, 1666 죽은 뒤에는 그토록 사랑하던 부인 곁에 묻혔다.

타지마할 묘건물은 델리에 있는 후마윤 묘건물에서 건축형식이 확립되기 시작한 무굴제국의 묘건물 건축양식을 한층 발전시켜서 절정을 이루게 만든 것으로 평가된다. 야무나강을 배후에 두고 동서 300m, 남북 560m 대지를 점유하고 있으며 전정(前庭), 사분정원(四分庭園, Charbagh), 묘건물의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타지마할 배치도

전정과 사분정원

오염문제 때문에 타지마할 500m 이내에는 차량 진입이 허용되지 않았다. 사람들의 흐름을 따라 우리 일행이 자연스럽게 도착한 곳은 서문이었다. 타지마할로 들어가는 문은 개가 있었다. 서문은 정문에 해당하며, 인도인 방문객들은 대부분 문을 통해 들어가기 때문에 하루 종일 줄이 줄어들지 않는다.

동문 근처에는 유명한 호텔들이 자리하고 있어서 외국인들이 주로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많은 단체객들이 몰리기도 하는 해돋이 시간대를 제외하면 대체로 줄이 길지 않은 편이다. 입장권을 미리 구입한 경우라면 동문 이용이 가장 편할 있다. 남문은 가장 이용하는 사람이 적은 곳이다. 이곳은 타지간지(Taj Ganji) 불리는 곳으로 시장과 카라반사라이가 있던 지역이다. 지금도 저렴한 호텔들이 위치한 복잡한 시장 구역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저예산 여행객들이 선호한다. 또한 문을 여는 시간이 다른 문들보다 늦어서 8시이다.

전정에서 사분정원으로 들어가는 정문

줄을 따라 서문을 통과하고 전정을 가로지르자, 붉은 사암 벽돌건물의 아치형 주변에 흰색 대리석을 입힌 웅장하고 화려한 정문이 나타났다. 이슬람 건축에서 흔히 있는 움푹 들어간 아치형 안에 다시 개의 아치형 문이 위와 아래 2열로 만들어져 있고 아래 열의 가운데 문을 통해 출입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정문 건물의 꼭대기 귀퉁이에는 차트리(chhatri) 설치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균형미를 더해 주고 있었다.

정문의 아치형 문 실루엣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되는 타지마할의 모습

정문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앞이 깜깜해졌다. 맞은편 아치형 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따라 다가가자 아치형 문틀 실루엣 안에 마치 폭의 그림인양 타지마할의 모습이 저쪽 편에 나타났다. 모습에 취한 사람들도 문틀을 넘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는 듯했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가 사분정원으로 들어섰다.

정문을 나와 사분정원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이 타지마할의 전경사진을 찍거나 타지마할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앞에 펼쳐진 사분정원의 중앙에는 분수가 솟아오르는 사각형의 연못이 있고, 동서와 남북을 가로질러 수로를 따라 정원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다. 넓은 사분정원이 묘건물 전면에 펼쳐져 있고 야무나강이 전체 조경의 일부인 배후에 흐르고 있다. 사분정원의 수로 혹은 야무나강에 비친 타지마할의 모습 또한 환상적이어서 수많은 사진가들이 모습을 카메라 앵글에 담기 위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정문을 나서 사분정원이 시작되는 곳에 이르면 많은 사람들이 타지마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모여 있다 .

변의 길이가 300m 이르는 정사각형 형태의 사분정원이 지금은 분수와 수로가 있는 잔디정원으로 보이지만, 원래 페르시아 정원에서 영감을 받은 무굴 정원으로 천국의 개의 강이 흐르는 천국의 정원을 상징했다. 정원에 대해 묘사한 초기 기록에는 장미, 수선화, 과실나무 등이 무성이 자라고 있었다고 했지만, 대영제국 시대에 마치 런던의 잔디정원 모습으로 바뀌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좌우 대칭미가 뛰어난 타지마할의 모습

중앙의 묘건물

우리는 천천히 사분정원을 둘러보며 경내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중앙의 묘건물로 향했다. 묘건물은 변이 95m, 높이 7m 정사각형 평면 기단 위에 있는 거대한 흰색의 대리석 구조물로 움푹 들어간 아치형 입구, 대형 돔과 뾰족한 꼭대기 장식이 달린 좌우 대칭의 건물이었다. 그리고 중앙에 솟아오른 둥근 돔의 높이는 65m이며 지붕과 천정의 2 구조로 되어 있다. 중앙의 돔을 닮은 보다는 작은 개의 차트리 귀퉁이에 있어 전체적으로 훨씬 안정감을 갖게 같다.

이슬람을 상징하는 초승달 문양이 끝을 장식하고 있는 돔의 뾰족한 꼭대기 장식은 원래 금으로 만들어졌었는데 19세기 초에 금동 복제품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기단의 모서리에는 높이 40m 첨탑(minaret) 있으며, 비슷한 길이의 3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꼭대기에는 중앙 돔을 둘러싸고 있는 것과 유사한 차트리가 얹혀져 있다. 첨탑들은 보통의 경우보다 묘건물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고 바깥으로 약간 기울게 세워졌는데, 이것은 만약 첨탑이 무너질 경우 중앙의 묘건물에 피해를 주지 않고 바깥으로 무너지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타지마할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
1첨탑과 첨탑 주변의 모습

묘건물에 가까이 다가가자 묘건물의 사각형 모서리가 접혀 있어 마치 모서리가 깎인 사각형 건물처럼 보였다. 사면의 중앙에는 이완(iwan)이라 불리는 움푹 들어간 아치형 입구가 만들어져 있는데 구조의 천장이 덮여 있어 반외부 공간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러한 구조는 후마윤(Humayun) 묘건물에서도 있다.

남쪽 이완 주변에 아랍어 글씨가 검정 대리석으로 새겨져 있다 .
화려한 꽃 문양과 추상적 문양이 피에트라 두라 기법으로 새겨져 있는 모습

묘건물의 대리석 벽에는 다양한 문양을 흑백 또는 화려한 색상으로 장식하고 있는 피에트라 두라(Pietra Dura) 눈에 들어왔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상감기법과 유사한 것으로 흰색 대리석 표면에 검은 대리석으로 붓글씨를 끼워 넣거나, 다양한 보석과 준보석으로 추상적인 문양 또는 식물 문양을 끼워 넣어서 단순하게 보일 수도 있었던 흰색 대리석 벽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묘건물을 둘러보고 북쪽 피쉬타크로 나오는 사람들 ( 왼쪽 ); 묘건물 북쪽 그늘에서 사람들이 쉬고 있다 . ( 오른쪽 )

움푹 들어간 아치형 입구로 다가가면 가운데 나무로 만들어진 격자창이 설치되어 있어 밝은 바깥에선 안을 들여다 보기 어렵게 되어 있는 피쉬타크(Pishtaq) 불리는 아치형 문이 있다. 주변에는 п 형태로 코란에서 따온 문구가 역시 피에트라 두라 기법으로 대리석 벽에 새겨져 있었다. 관광객들은 묘건물의 남쪽 피쉬타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바퀴 둘러보고 북쪽의 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가게 된다.

묘건물 배치도 ( 왼쪽 ); 화려한 문양의 가짜 관 ( 왼쪽 위 ); 좀더 단순한 문양으로 장식된 지하의 진짜 관 ( 오른쪽 아래 )

묘건물로 들어서니 곳곳에 격자창을 통해 자연채광으로 빛이 들긴 하지만 대체로 어두운 편이었다. 묘건물의 가운데에 타지마할의 주인공인 뭄타즈 마할의 관이 안치되어 있었다.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대리석 기단 위에 역시 문양으로 단장한 대리석 관이 남북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뭄타즈 마할의 서쪽에 그녀의 관보다는 좀더 크고 하나가 좀더 높은 기단 위에 안치되어 있었다. 그녀보다 늦게 죽은 자한의 관이었다. 죽어서라도 그토록 사랑했던 왕비 곁에 몸을 뉘일 있게 되어 행복했을까?

주위에는 둥그렇게 대리석 격자 스크린이 둘러싸고 있었다. 격자 사이로 관들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편안히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많은 관람객들이 밀려오는데 구태여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특히나 관은 가짜 관이기 때문에 그랬다. 진짜 관은 바로 아래 지하에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지구 위에 서 있는 샤 자한의 그림 ( 왼쪽 ); 뭄타즈 마할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 ( 오른쪽 )

뭄타즈 마할

뭄타즈 마할은 무굴제국에서 고관으로 있던 부유한 페르시아 귀족 가문 출신으로 1593 아그라에서 태어났으며 이름은 아르주만드 바누 베굼(Arjumand Banu Begum)이었다. 15 후에 자한으로 알려지게 되는 쿠람(Khurram) 왕자와 약혼하고, 1612 20 결혼하여 그의 번째 부인이 되었다. 쿠람 왕자는 그녀에게 뭄타즈 마할이라는 칭호를 내렸는데, “궁정의 고귀한 라는 뜻이라고 한다.

뭄타즈 마할은 자한과의 사이에 14명의 자녀를 두었다. 중에는 자한이 가장 아끼던 자하나라 베굼(Jahanara Begum) 왕위계승자로 지목되었던 황태자 다라 슈코(Dara Shukoh)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뒤를 이어 6 무굴 황제로 등극한 사람은 여섯 번째 자식인 아우랑제브였다. 그리고 뭄타즈 마할은 1631 지금의 마디아프라데시에 있는 부란푸르(Burhanpur)에서 14번째 자식인 가우하르 아라 베굼(Gauhar Ara Begum) 낳다가 죽고 잠시 그곳에 묻혔다. 당시 자한은 아내의 죽음에 가눌 없는 슬픔에 빠졌던 것으로 기록은 전한다. 황제는 후에 아내의 시신을 야무나 강변으로 옮기고 그녀를 위한 영원한 안식처를 건설했다.

타지마할 묘건물은 균형과 비례의 아름다움과 구석구석마다 완벽하게 마무리되어 있는 정교하고 뛰어난 기술 수준으로 말미암아서 인도의 이슬람 건축 문화를 대표하며 세계 건축사상 가장 뛰어난 걸작 중 하나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우리는 북쪽 피쉬타크를 통해 묘건물에서 나왔다. 묘건물의 그림자가 크게 있어 뜨거운 태양빛에 지친 사람들이 넓은 대리석 바닥에 앉아 쉬고 있었다. 북쪽으로는 담장 너머에 야무나강이 동서로 흐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너머에 25헥타르에 이르는 메흐타브정원(Mehtab Bagh) 있는데 야무나강에 비친 타지마할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특히 그쪽에서 보는 석양이 내려앉은 타지마할의 모습이 환상적이다.

야무나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타지마할의 북쪽 전경

자한은 애초 타지마할과 마주보는 야무나강 건너편에 검은 대리석으로 자신의 묘를 짓고, 구름다리로 연결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야무나강 건너편에서 건물의 기단을 조성한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진위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중앙의 묘건물과의 사이에 각각 수심이 얕고 넓은 장방형의 반사지(反射池) 두고 동쪽에는 타지마할을 찾는 왕족들이 머물던 영빈관이 있고, 서쪽에는 이슬람사원이 있다. 건물들은 붉은 사암으로 만든 전형적인 무굴양식의 건축으로 중심 부분에 있는 타지마할과 매우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관심이 집중된 타지마할 때문에 사람들은 건물들은 크게 의식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다시 사분정원과 서문을 통해 주차장으로 향했다.

중앙 묘건물의 동쪽에 있는 영빈관 건물의 모습

사람들은 타지마할의 아름다움과 자한과 뭄타즈 마할의 애끓는 사랑 이야기에 이끌려 이곳을 찾는다. 게다가 타지마할은 1983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2007 세계 7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현재 1년에 7~8백만 명의 방문객들이 이곳을 찾으면서 인도를 대표하는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이런 타지마할도 걱정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그라의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타지마할의 하얀색 대리석이 급격하게 노란색으로 변하고 있다. 타지마할 주변에서 오염원을 줄이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나 한계가 있는 듯하다. 하나의 문제는 타지마할 아래 지하수 수위가 급격히 낮아져 타지마할이 군데군데 바른 속도로 갈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물속에 잠겨 있었던 나무로 토대부분이 썩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결과 첨탑도 점차 기울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후손들도 타지마할을 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안고 아그라를 떠났다.

 

참고 사항

  • 최적의 방문 시기: 11 ~ 2. 외의 기간에는 너무 덥거나 우기일 가능성이 높지만 각종 할인으로 가격이 저렴해 있다.

  • 운영시간: 오전 6 ~ 오후 7, 금요일은 폐장 (부속 이슬람사원의 종교활동 진행)

  • 입장료: 외국인 - 1,100 루피 (중심 묘건물 입장 추가 200 루피 선택)

  • 외국인의 입장료에는 신발 덮개, 생수 1, 아그라 관광지도, 입구까지 버스나 골프카트 서비스 등이 포함된다.

  • 야간 관람: 한달에 5 개장 (보름날, 보름 2, 보름 2)입장권은 야간 관람 하루 전에 아그라 ASI 에서 구입 가능 (오전 10 ~오후 6). 야간 입장권 가격: 외국인 750 루피, 어린이(3~15) 500 루피. 운영 시간: 20:30 ~ 00:30. 최대 50, 8 입장. 팀당 입장 시간은 30

  • 오디오 가이드: 인도 정부의 오디오 가이드 AudioCompass 설치하여 이용할 있다. 가지 외국어로 제공한다.

  • 승인을 받은 가이드는 50~60 밖에 되지 않으며, 입구에서 가이드라고 소개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법 가이드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같다.

  • 안전 조치: 최근 더욱 엄격한 안전 조치들이 지켜지고 있다. 모든 가방은 전자스캔 검사를 받아야 한다. 가방은 가지고 들어갈 없다. 입구에 보관시설이 있다. 작은 가방과 필수물품만 허용된다. (필수물품에는 휴대폰 1, 카메라 1, 1인당 물병 1 등이 포함된다. 음식물, 담배, 라이터, 휴대폰 충전기, 헤드폰, 태블렛PC, 손전등 등을 포함한 전기기기는 허용되지 않는다.)

  • 위험 요인: 거지, 암표상 등이 많으며 처음부터 관심을 표시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가이드 또는 택시기사를 자처하고 무료 서비스 또는 할인 등을 제공하겠다며 따라 붙어서 끈질기게 괴롭히는 경우가 많다. 아그라 기차역 등지에서 24시간 운영되는 릭샤 또는 택시 정류장을 이용하는 것이 그나마 조금 안전하다. 오토릭샤 등을 이용할 경우, 어느 출입구로 달라고 정확히 요구해야 한다. 중간에 비싼 마차나 낙타차가 있는 곳에 내려 놓고 가버려서 곤란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