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두랑갈라, 장대한 시기리야 조망점

피두랑갈라(Pidurangala)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관광명소인 시기리야(Sigiriya)로부터 북쪽으로 직선거리 1km 떨어진 곳에 솟아오른 바위산이다. 이곳은 시기리야 성채(城砦) 가장 조망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시기리야의 모습도 훌륭하지만 사방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전경도 숨을 멎게 만든다. 또한 피두랑갈라 정상은 멋진 해돋이를 감상할 있는 장소로 알려져 있어 해가 뜨기 전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피두랑갈라   정상에서   바라본   시기리야의   모습 .
시기리야 북쪽 사자문과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정상에 오르면 흔들바위를 만난다. 피두랑갈라가 화산활동으로 200m를 솟아오를 때도 굴러 떨어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나 보다!
시기리야를 배경으로 다양한 모습을 연출한다.

이곳 정상에서 누릴 조망은 정말 뛰어나다. 이곳 정상에서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대자연을 바라보면 감동이 밀려온다. 아마도 시기리야에서 있는 전경보다 뛰어난 같다. 그래서일까? 시기리야처럼 화려하지 않아서인지 이곳을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었다고 하는데, 이제 입소문으로 알려져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파두랑갈라와   시기리야   주변   지도.

시기리야 남문 입구에서 왼쪽으로 해자를 따라 가다 시기리야 북쪽에서 북쪽으로 길로 접어들면 그리 오래지 않아 피두랑갈라 입구에 이르게 된다. 거리는 2.6km 다른 길보다는 짧지만 이곳의 경비원이 차량을 통과시켜 주지 않아서, 차량으로 이동할 경우 되돌아서야 가능성이 크다. 차량이나 툭툭으로 이동할 경우, 다른 길은 시기리야호수를 지나 하바라나(Habarana) 향하는 길에서 서쪽으로 길로 들어서면 피두랑갈라에 도착할 있다. 길은 길이가 3.5km 이르며, 정글 속으로 길을 따라가다 보면 구석구석에서 민박집과 게스트하우스를 만난다.

멀리서 보면, 피두랑갈라는 사방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벌판에 봉곳이 솟아오른 소녀의 젖가슴 같다. 피두랑갈라는 시기리야와 같이 화산폭발로 생성되어 주변 평지에서 높이 솟아오른 거대한 바윗덩어리이다. 바위기둥이 솟아오른 모습의 시기리야보다는 피두랑갈라가 좀더 보인다. 반면에 피두랑갈라의 정상에 오르면 시기리야와 같이 거대한 바윗덩어리이지만 심하게 경사가 있다. 아마도 옛날 시기리야 정상에 왕성을 건설했던 사람들에게 피두랑갈라의 정상은 그들의 목적에 들어맞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기리야 북쪽 정상에서 바라본 피두랑갈라의 모습. 시기리야와 같이 화산활동으로 융기한 바윗덩어리이지만 외관은 봉곳이 솟아오른 산봉우리 모습이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배경으로 갑자기 솟아 있는 산봉우리 하나가 신비롭다.

피두랑갈라사원

피두랑갈라에 오르려면 입구에 있는 불교사원을 통과해야 한다. 길가에서 가까운 사원입구로 들어서면 스리랑카의 불교사원을 방문할 때면 언제나 그런 것처럼 신발을 벗어야 한다. 이곳에는 승려 기거 시설, 불상을 모신 법당, 강연실 등으로 갖춰져 있다. 사원을 지나면 다시 신발을 신고 산을 올라야 하므로 우리는 신발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실제론 기부금으로 1인당 500루피) 구입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맞은편에 외관이 하얀색인 석굴사원이 나타난다. 이곳은 불상을 모신 법당이다.

피두랑갈라 정상에 오르는 길.
피두랑갈라 정상에 오르려면 이 입구를 통과해서 사원을 지나야 한다.

석굴사원 암벽의 상단 부분에는 담불라 석굴사원(Dambulla Cave Temple) 경우와 마찬가지로 빗물이 석굴 내부로 흘러 들어가지 못하도록 처리되어 있었다. 부분에 새겨져 있는 브라미(Brahmi) 문자로 추정해보면 석굴사원에 불교사원이 조성된 것은 최소한 기원전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피두랑갈라 언덕 기슭에 자리잡은 석굴사원 가장 안쪽에는 중앙에 와불상이 길게 누워 있고 좌우 양쪽 끝에는 입상 또는 좌상의 불상들이 마주보고 있다.

양쪽 끝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 불상은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 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석굴사원의 안쪽, 불상이 모셔져 있는 부분을 제외하면 외부의 하얀색 건축물과 승려들 기거 시설 강연실 등은 모두 역사가 그리 오래지 않다. 최근의 보수작업으로 양쪽의 불상에 현대적 기법이 적용되긴 했지만 원래의 우아한 모습의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내실의 벽에는 붓다의 생애에서 주요한 장면들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내실 출입문 주변에는 실물 크기의 마리의 사자와 칼을 쥐고 있는 수호신들이 지키고 있다.

피두랑갈라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석굴사원의 외관 모습.
하얀색 석굴사원 건물로 들어서면 불상을 모신 내실 입구를 사자와 수호신들이 지키고 있다.
석굴사원 내부에 불상을 모신 내실의 모습. 중앙에 길게 와불상이 모셔져 있고 좌우 양쪽 끝에 입상 또는 좌상의 불상이 마주보고 있다.

사원의 이름은 피두랑갈라 시기리 라자마하 사원(Pidurangala Sigiri Rajamaha Viharaya)이다. 피두랑갈라의 역사는 기원전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부터 불교사원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시기리야에 성채와 도시를 건설했던 카샤파 1(Kashayapa I, 473-495 AD) 통치하던 시기였다.

그는 당시 적자였던 목갈라나(Moggallana) 왕자에게 왕위가 돌아갈 것을 염려하여 아버지인 다투세나(Dhatusena, 455–473 AD) 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 남인도로 피신한 목갈라나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를 버리고 이곳의 깎아지른 바위산 시기리야에 궁전과 난공불락의 요새를 건설했다고 전한다. 그는 시기리야에서 수행하던 승려들을 피두랑갈라로 옮기도록 하고 새로이 사원을 건립하도록 많은 기부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피두랑갈라라는 말도 싱할라어로 무더기를 기부한이란 의미라고 한다.

피두랑갈라 주변의 고고학 발굴현장 배치도.
피두랑갈라사원 길 건너편 북쪽에 있는 이 고대 스투파는 카샤파왕의 다비식이 이루어졌던 곳으로 전해져 온다. 스투파 위쪽 구조물은 사라지고 없다.

당시 카샤파왕이 건립했다는 우팔라바나 카샤파 기리 사원(Uppalavanna Kashyapa Giri Viharaya) 피두랑갈라에 위치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현재의 피두랑갈라 시기리 라자마하 사원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피두랑갈라 주변 일대에 넓게 자리잡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며, 현재의 피두랑갈라사원으로부터 길을 건너 북쪽으로 200m 되는 곳에 퍼져 있는 피두랑갈라 고고학 발굴현장이 일부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엔 유적 잔해들이 여전히 곳곳에 남아있다.

석굴사원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피두랑갈라로 오르는 돌계단이 시작된다. 돌계단을 오르기 전에 신발을 다시 신을 있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건강한 사람에게는 그리 힘들지 않을 정도이며 천천히 올라가도 30분이 걸릴까 말까 정도였다. 대부분의 길은 전혀 복잡하지 않아 따라갈 있을 정도였으며, 평지도 나타나지만 그리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진다.

석굴사원에서 시작되는 돌계단 입구.
정상으로 가는 돌계단은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었다.
돌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도달하면 오른쪽으로 거대한 피드랑갈라 바윗덩어리를 두고 산을 오르게 된다. 왼쪽으로는 숲이어서 멀리서 보면 하나의 산봉우리처럼 보인다.

벽돌 와불상

한동안 길을 따라 올라가면 만한 거리에 평지가 나타난다. 운동장처럼 넓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한 규모의 공간이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절벽 아래 부분에는 움푹 파인 공간이 길게 자리하고 있어 예전엔 석굴사원이 자리하고 있었던 같다. 석굴은 벽돌 벽으로 구분되어 여러 개의 방을 이루고 있는데 한가운데 가장 방에 13.7m 길이의 아름다운 벽돌 와불상(臥佛像) 누워있다. 벽돌로 불상을 조성하는 것은 폴론나루와(Polonnaruwa) 시대 불상의 특징이며, 불상의 의상 스타일도 폴론나루와 시대 불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벽돌 와불상 앞의 평지의 모습. 와불상 앞뒤로 여러 개의 방들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벽돌 와불상에는 외관을 장식했던 회반죽의 원래 부분이 아직도 남아 있다.
와불상의 상반신은 오랜 세파를 겪으며 훼손되었다가 복원되었다.

와불상의 발치 아래로 6-7세기 싱할라어로 바위 위에 새겨진 명문(銘文) 있으나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닳아서 해독에 어려움이 있다. 어느 역사기록에도 피두랑갈라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이곳의 여기저기에 새겨진 명문들이 피두랑갈라의 역사에 대한 해답을 제공할 있었을테지만, 이렇게 마모로 해독이 어렵거나 브라미어 명문처럼 너무 간단해서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미래에 신기술이 나와 완전한 해독의 실마리를 풀게 날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발걸음을 옮겼다.

피두랑갈라 정상

벽돌 와불상을 지나면, 정상까지 남은 구간이 아주 어렵지는 않지만 거의 암벽등반에 가까운 코스이다. 바위를 기어올라 가기도 해야 하고, 좁아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으면 기다렸다가 다시 오를 있기도 하다. 활동이 자유로운 젊은이들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은 오르기 힘든 길이다. 그리고 마지막 걸음은 등반의 화룡점정이라도 되듯이 크게 뛰어올라야 하는데 거대한 바위에 머리가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마침내 정상에 올라서면 모든 수고로움이 하나도 아깝게 느껴지지 않을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피두랑갈라에서 바라보는 시기리야의 모습에서 눈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인생샷하나 만들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경치였다. 그래서인지 시기리야를 바라볼 있는 흔들바위 주위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다.

피두랑갈라에서 바라본 남쪽 전경.
피두랑갈라에서 바라본 남쪽 전경.
시기리야 조망점에 바라본 시가리야의 북면 모습.

그러나 흔들바위를 지나 정상의 넓게 열린 공간으로 나오면 사방 킬로까지 시야를 가리는 것이 전혀 없다. 거대한 바윗덩어리 위에 신기하게도 무리의 나무가 있다. 나무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좁고 비교적 평평한 반면, 서쪽으로는 넓고 크게 경사가 있다. 주변 경치를 휴대폰에 담는 사람들도 있고, 여기저기 홀로 앉아 명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해돋이 조망점에 바라본 피두랑갈라 정상의 모습.
피두랑갈라 정상에서 만나는 한 무리의 나무들.
해돋이 조망점에 바라본 북쪽 전경.

내려가는 길은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간다. 오래 머물고 싶고, 다시 찾고 싶은 곳이었다. 영감을 받고 싶을 찾고 싶은 곳이었다. 고대로부터 진리를 찾아 정진하기 위해 불교 승려들이 밀림 한가운데 불쑥 솟아 있던 이곳에 자리 잡았던 것도 그런 이유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우리는 하산을 시작했다.